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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영화공간.

<영화 세레니티 2018 결말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

주연: 매튜 매키너히 , 앤 해서웨이.

 

 

 

<영화 세레니티 2018 결말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

 

이 리뷰는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그냥 재미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화는 잔잔하게 흘러가다가 장르를 바꾸는 여러 시도를 한다.  그냥 정보 없이 영화를 보았다가 아름다운 바다와 자연을 담아낸것과 작은 섬마을 주제로 참치에 미친 한 남자의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다가 의외로 깊게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던것같다.

 

뭔가 뜨뜨미지근한 결말에 사람들의 평가가 확 나뉠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 결말에 실망을 하고 평점 자체도 낮은 그저 그런 영화가 되어버린것같다. 하지만 나는 꽤 볼만했었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리뷰를 써보려한다.

초반 잔잔하던 내용에서 갑자기 노선을 틀고 스릴러와 sf적 요소가 가미되면서부터의 부분을 한번 얘기해보려고 한다. 

 

13살인 아들 패트릭은 학교에서도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것이 13살인 어린나이로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어내서인지... 아니면 무언가 영적인 부븐을 게임상의 가상현실과 연결하는 것을 알아낸것을 말하는지는 영화상에 나와있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어린 패트릭은 분명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를 너무나 그리워했기에. 지옥같은 현실에서 자신의 보호자를 찾아 가상현실속을 헤메이는 그의 마음을 나는 조금은 이해할수있을듯하다.

 

어쩌면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고싶다는,아버지가 있다면 나를 보호해줬을텐데라는 간절한 그의 마음이 두 세계를 이어준것은 아닐까?

 

특정한 물고기를 잡는게 이 게임의 룰이다. 충동은 규칙이고 딜베이커이다.

고로 딜 베이커는 항상 참치만을 잡으려 행동해왔다. 돈을 벌어도 참치 뿐. 하지만 오로지 참치뿐인 인생에 갑자기 새로운 룰, 충동이 일어나게 된다. 

 

그의 아들 패트릭이 룰을 바꾼것이다. 즉 딜 베이커의 충동을 참치에서 자신의 계부의 살해 (조력자) 로 바꾼것이다. 

 

여기서부터 그의 규칙적이던 삶의 싸이클이 조금씩 미묘하게 바뀌게 된다. 결국 기억해내지 못했던 과거들도 조금씩 기억해내고 결국 자신은 게임속의 삶을 살고있고 아들과 소통하는것도 진짜라고 받아드리게 된다. 

 

그렇게 거짓말같던 일들이 진실이되고 항상 자신의 편이였던 마을 사람들...자신이 룰이라고 했던 남자의 충격적인 말들이 모두 이해할수있게 변하며 점점 이 모든 현실을 받아드린것이다.

 

패트릭의 어릴적 기억은 항상 아버지가 낚시에 신경질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이였다. 자신과 둘만의 여행에서 고작 물고기를 못잡았기에 화를 내는 그의 모습은 어린 패트릭에게 어쩌면 충격이였을지도 모른다.

 

그 강렬했던 기억이 그대로 딜 베이커의 기본적인 요소로 만들어졌다. 

 

다만 그 대상이 물고기가 아닌 환상의 참치로 좀더 명확하게 정해지게 되어있을뿐.

그에게 참치의 이름은 저스티스 였다. 정의 라는 이름을 가진 참치. 무엇이 정의일까. 정의를 명확하게 말할수 있는 이는 세상에 없을것이다.

 

정의는 잡을수 없다. 가질수 없다. 모든게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의는 승리한다.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말이지만 영화상에서 참치 저스티스는 결국 그를 잡으려는 계부를 심해로 끌고 들어간다. 정의가 승리한것이다.

 

계부는 늘 자신에게 잘해줬다고 얘기하지만 그가 행한 행동이 정당화 될수는 없었다. 매일같이 어머니와 자신에게 행하는 폭력과 폭언. 하지만 그 이후에 잠깐의 아들을 위한 행동.....

 

밖으로 나가서 공놀이라도 하자. 어디 가고 싶은데는 없니?

 

가식에 대한 말들은 그에게 정의는 아니였다.  위선은 정의를 이기지 못한다. 

결국 저스티스에게 계부는 살해당한다. 정의가 승리한다는 아이적인 발상이 들어간 천재적인 생각의 결과물이 아니였을까?

 

이 모든것은 아버지가 직접 살해한것도 아닌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게임속 참치인 저스티스가 해낸것이다. 아버지를 의지하지만 이미 아버지는 세상에 없다. 

 

그렇기에 실행도 자신이 해야만 했다. 환상의 참치는 아들 그 자체였다. 영화의 마지막부분은 아들이 직접 칼(딜 베이커의 칼.)을 쥐고 방밖을 나가는것을 보여준다.

 

즉 자신이 처리를 하겠다는 뜻이다. 가상 현실 게임에서 참치가 그를 심해로 끌고 내려갔기에. 현실에도 결과가 있어야만했다. 

 

계부를 살해하기전 카메라 앵글은 패트릭의 방에 있는 큰 어항을 통해 패트릭을 비추며 마치 패트릭이 물속에서 계부를 잡아 끌고간 저스티스를 비유하듯 앵글 구도를 잡는것 같아보였다. 아버지의 유품인 칼을 쥐고 방문을 나가는 장면은 참치 저스티스와 패트릭은 같다.라는 것을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것은 아니였을까? 

 

아들이 극중 계부에게 한 말이 있었다.

 

"하루종일 게임속에서 고기를 안잡으면 당신을 죽일 방법을 찾아낼거야."

 

그 말은 곧 현실이 되었다. 패트릭의 충동과 친부인 딜 베이커의 충동은 일맥상통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물고기에 대한 흥미였다. 자신이 프로그래밍 했지만 환상의 참치를 계속 놓치는 패트릭. 마찬가지로 환상의 참치인 저스티스에게 상징적인 이름마저 지어주며 참치만을 위한 삶을 사는 딜 베이컨. 

 

하지만 이제 그 충동은 다른곳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결과는 '계부의 살인' 이였다. 

현실 경찰서에 있는 조사실 같은곳에서 영화 내내 웃지 않았던 패트릭은 마지막 장면인 보트에서 아버지와 재회하며 현실에서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며 끝이난다. 

 

열린 결말의 영화이지만 아이의 아버지를 원하는 마음과 현실세계의 계부에 대한 증오.  그 모든것에서 유일한 탈출로인 가상현실을 만들어냈던 패트릭. 

 

하지만 점점 그 현실과 게임상의 경계가 무너지며 자신이 그리워 하는 아버지와 조금씩 소통하게 되는 패트릭.

마지막 장면에서 컴퓨터 앞이 아닌 폐쇠된 (마치 경찰서 조사실 같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곳에서 아버지와 만나며 영화가 끝이난다는건 이미 컴퓨터는 필요 없이 자신의 세상을 창조할수 있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인가 설명 불가능한 능력으로 패트릭의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졌던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극중 패트릭이 했던 말을 끝으로 영화 리뷰를 끝내려 한다. 열린 결말성 영화이기에 무엇이 옳고 그른것이 아닌 생각하는 재미가 있었던 영화인것같다. 결말은 여러분들 각각의 의견과 해석이 있기에 판단은 여러분들에게 맡긴다. ^ ^

 

"아빠, 난 게임을 바꿔 가끔 아빠와 만날수 있게 할거야. 괜찮겠지...?"

 

"난 여기 있어. 날 보러와라 난 세레니티에 있어. 우린 언제나 원하는 곳으로 갈수있단다."

 

"좋아, 같이가."

 

"그래.( 아빠가 미소짓고 패트릭도 처음으로 영화에서 옅은 미소를 띄운다.)낚시하러 가자. 배에서 기다릴게."

 

그리고 딜 베이커의 가상현실 세상은 허물어지며 변화하게 된다. 패트릭과 보트에서 서로를 다시 없을 만큼 꼭 껴안아주며 그들은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